구례 가볼만한곳 운조루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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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과 구례는 정말 딱 붙어있다. 하동은 박경리 소설 토지의 배경지로 유명한 곳인데 주인공인 서희의 토지가 하동은 물론 구례에까지 있었다하니 그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 하지만 그 많은 토지를 소유했다는 것이 놀랍다. 소설이긴 하지만... 전남 하동은 가을 여행지로 참 잘 어울리는 장소다. 들판에 전봇대 없이 오로지 풍성하게 익어가는 결실의 계절에 만나는 하동은 사람의 마음까지 넉넉하게 해준다. 9월 말에서 10월이 하동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1박2일 하동 여행을 계획한다면 지나는 길에 구례 가볼만한곳도 몇 곳 들러보는 것도 좋은 여행코스가 될 수 있다. 국도 여행이었기 때문에 하동을 벗어나 구례로 넘어와, 다녀온 사람들의 평이 좋았던 운조루 고택을 들러보았다.

  첫번째, 운조루 유물 전시관

주차장과 입장료가 모두 무료이며 관람시간은 오전 10시 ~ 오후 5시까지이다. 운조루 유물 전시관은 조선 후기부터 약 300년 동안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문화 류씨 가문의 역사와 삶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대대로 내려온 물건들을 전시해놓아서 박물관과 같은 느낌이 든다. 안에는 해설사 분이 상주해 계시고, 단 2명이 방문하더라도 친절한 설명을 해주신다.전시관은 2012년 7월에 조성을 하고 2014년 12월에 준공, 2015년 12월 운조루로부터 유물을 받아 2016년 4월에 문을 열었다. 

영상이나 모형 등을 통해서 과거 조상들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으며 특히 해설사분의 설명이 함께 하니 이해하기도 쉽다. 300년 동안 한 곳에서 자리잡고 살아온만큼 선조들의 생활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물건들이 많은데 조금 안타까운 부분도 있었다. 운조루 고택이 유명해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오래된 물건들을 보고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후손들은 좋은 의미로 그 물건들을 사람들 앞에 보여주고 소개도 해주고 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보여준 가치있는 물건들은 꼭 도둑을 맞았다고 한다. 보기 위해 찾아왔던 것은 단순한 의미가 아닌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는 거다. 그뒤 전시관을 만들어 일부만 공개하고 나머지는 집안에 가보처럼 소중하게 보관되고 있다고 한다. 박물관에 있는 물건을 탐내는 것과 같은 사람들의 욕심, 남의 물건에 대한 탐욕.

  유물 전시관을 나와 왼쪽길로 들어서면

잘 닦아진 길이 있다. 한의원이나 숙박 등을 할 수 있는 상업화된 구역인데도 풍경이 워낙 좋아서 이쪽길 산책도 놓치지 않도록 하자. 집 마당마다 정원이 퍽도 예쁘게 가꾸어져 있고, 마당에 정자까지 있어 약간의 변형되었지만 한옥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름 모를 꽃들과 잔디가 깔린 정갈한 마당. 알록달록 색칠된 벌통에서는 쉴새없이 드나드는 부지런한 꿀벌을 볼 수도 있다. 


마을을 돌며 남쪽을 내다보면 구례의 넓은 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이제 수확을 끝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눈이 수북하게 쌓인 겨울의 풍경도 운조루 고택과 함께하면 낭만이 가득할 것 같다. 가을에는 꽃도 좋아, 억새도 좋지만 노랗게 익어있는 들판만으로도 충분한 아름다움이 묻어나고 자라고 있다.

유물 전시관을 기준으로 이제 오른쪽으로 가면 드디어 구례 가볼만한곳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운조루 고택의 모습이 드러난다. 연못은 연잎으로 가득 덮혔다. 꽃이 피는 시기를 제대로 맞춰서 전남 여행을 온다면 더 뛰어난 풍경을 만나고 갈 수 있다.

운조루 입장료

성인 : 1,000원

학생 : 700원

10세 미만 : 무료

휴무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임시공휴일


  운조루 고택

1776년 영조 52년에 류이주는 선대의 거주지였던 경상도 대구에서 구례 오미동으로 이주해왔다. 원래 풍수설에 밝아서 길지라는 것을 바로 알아채고 터를 닦기 시작했다. 7년의 긴 공사기간을 거쳐 1776년에 완성되었고, 그 후 지금까지 대대손손 이곳에서 가문의 영광이 시작되었다. 처음 터를 닦은 류이주는 당시 삼수부사를 지내던 사람이었다.

조선시대 양반 가옥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이 집은 사랑채의 당호라고 한다. 나눔과 배려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데 그 사실은 '타인능해'라는 쌀뒤주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오랜 역사는 건물의 모든 곳에서 그대로 느껴지고 있었다. 고택을 많이 가보았지만 거의 복원 없이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곳은 드물고, 나무 기둥 하나하나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고 경이로웠다. 신기했다. 전쟁도 많았고, 일제강점기도 거친 우리나라인데 어떻게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을까, 더군다나 한국전쟁까지 있었는데 말이야.

집안이 오래 번창할 수 있었던 이유는 '타인능해'라는 쌀 뒤주 때문이었다.

 타인능해 : 누구나 능히 열 수 있는 나눔쌀독

유명한 뒤주가 집 안에 있다. 배고픈 사람이면 누구나 와서 뒤주를 열고 쌀이 필요한만큼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뒤주가 비워지면 다시 쌀을 채우고 '누구나 열 수 있다'라는 문구를 새겨놓았다. 가난한 이웃들의 마음까지 배려하여 안채로 통하는 문간에 두었다고 한다.

동학농민운동, 여순사건, 6.25전쟁을 거치면서도 운조루가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평소 이웃을 배려하고 베풀 줄 알았던 집안 대대로 계승된 베품의 미덕 때문이었다. 타인능해, 구례 가볼만한 곳에서 배움을 얻어간다. 

집 안에는 할머니가 머물고 계셨다. 자식들은 번화가로 나가고 할머니 혼자 이곳에서 머물며 입장료를 받으셨다. 80도 넘으셨을까, 이곳의 며느리로 들어와 한국 현대사를 다 겪으며, 또 이곳도 지켜내셨다. 운조루 고택 안에는 할머니의 장독대가 있다. 손수 담근 장들을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게 팔기도 하셨고, 갓 수확한 농산물도 판매하셨다. 된장을 사려는 사람으로 인해 장독대가 열렸다. 고소한 냄새가 운조루 구석구석 가득 채운다. 얼마나 구수하고 맛이 좋던지 냄새에 취해, 공기를 야금야금 먹고 싶어질 정도였다. 가득 담아 만원인데, 옆에 작은 그릇을 하나 내밀며 더 달라는 사람에게 인심좋게 또 담아주신다. 할머니, 참 곱게 나이드셨어요.

할머니의 장독대와 운조루 고택이 주는 여유로움에 취해 사람들은 그곳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화려한 볼거리는 없다. 그래서 구례 가볼만한곳으로 이곳을 찾아오는 어떤 이는 실망을 할 수도 있다. 나에게는 충분했다. 고택에서 품어져 나오는 고귀함이 나에게 전달되는 듯했다. 마당 대추나무는 가지가 부러질만큼 열매를 맺었다. 풍성한 가을에, 구례도 맛있게 익었다. 그 풍경은 운조루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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