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삼릉숲 소나무 향기가 가득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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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여행을 갈 때마다 늘 새로운 곳에 발을 들여놓고 싶었다.  누군가가 작성해 놓은 감탄스러운 여행기를 볼 때마다 차곡차곡 저장해두기도 했다. tvn의 알쓸신잡은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하며 몰랐던 분야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은 시즌2가 방송되고 있지만 알쓸신잡 시즌 1의 경주편에서 삼릉숲에 대해 알게 됐는데 참 흔하고 흔한 왕릉 하나를 보고자 그곳까지 가볼 필요가 있을까 했던 마음이 얼마나 옹졸했던지. 

사람들은 삼릉 소나무숲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여러 블로그를 둘러보니 하나같이 모두가 호평이다.  경주여행 중 최고였다는 찬사를 쏟아내는 분도 있었다. 과연 어떻길래? 왕릉 3개, 그리고 소나무만 있는 그런 공간 아니야?' 얼씨구, 가보기 전에는 말도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이미 여러 사람들도 좋다 말했고, 2박 3일 경주여행 중에서 나 역시도 손에 꼽는 곳이 되고 말았다. 그렇기에 경주 가볼만한곳에서 여기를 놓친다면 그건 큰 실수이다.

남산

남산의 일부분인 것 같았다.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입구에 주차장이 있고, 주차요금은 내야한다. 삼릉 입구부터 포석정까지 둘레길이 있고, 또 남산을 오르는 입구가 되는 곳이기 때문에 삼릉을 찾아 온 사람, 포석정까지 둘레길을 선택한 사람, 남산을 등산하려는 사람 등 그렇게 저마다의 목적을 가진 이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남산은 신라 천 년의 성지로 불리고 있으며 긴 타원형의 바위산이다. 곳곳에 왕릉과 궁궐터가 있으며 100여 점의 석조 불상, 90여기의 석탑이 있어 산을 오르거나 둘레길을 걷는 것은 살아있는 거리의 박물관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역사 깊고 의미있는 불교 문화재가 많은 남산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단단하기에 오랜 시간 풍화작용을 버텨냈다. 그래서 남산 내에 있는 문화재들은 보존이 잘 되었고, 덕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자연과 문화재가 공존하는 곳

자연의 품에 살아있는 신라의 문화


입구에서부터 삼릉까지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이렇게 걷기 좋은 평지를 한 3 ~ 4분만 걸어가면 

경주 삼릉숲의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소나무가 많은 곳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름 자체가 '삼릉 소나무숲'이기도 한데 난 뒷동산 정도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편백나무숲은 쭉쭉 시원하게 뻗은 나무들이 인상적이고, 소나무 숲은 자연스럽게 자란 풍경이 다정하게 느껴진다. 세상의 모든 비바람을 견디며, 혹은 모진 경험을 했지만 결코 부러지지는 않는 강인함이 소나무에게 있다. 어떻게 보면 또 아무렇게나 자라난 모양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모습은 오히려 감동적이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위로가 되는 속 깊은 공간이었다. 전남 강진에 있는 다산 초당은 정약용 유배지였던 곳인데 그곳으로 오를 때 '뿌리의 길'은 무척 신비하다. 경주 삼릉에는 그 신비함이 차고 넘쳤다.



경주 배동 삼릉

삼릉이라 부르는 이유는 신라시대의 왕이었던 3분의 무덤이 한 자리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이 이 무덤의 주인공으로 세 왕의 업적을 알 수 있는 안내도 있다. 아달라왕의 재위기간은 154년 ~ 184년이니 지금으로부터 거의 1900년 전이다. 그는 백제가 침입하자 직접 군사를 데리고 전장에 나아갔으며 왜와 교류하기도 했다. 

재위기간이 912 ~ 917년인 신덕왕 때는 후백제와 후고구려가 건국하여 한반도는 후삼국 시대에 이르렀다. 견훤과 궁예의 침입으로 나라는 늘 전쟁에 휩싸였던 시기, 신덕왕의 무덤은 삼릉 중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917년 ~ 924년이 재위기간인 경명왕은 신라의 국운이 기울어졌던 시기로 후고구려는 무너지고 왕건이 고려를 세운 때와 맞물린다. 왕건과 손을 잡고 후백제 견훤의 대야성을 공격하기도 했다. 54대 경명왕, 55대 경애왕과 56대 경순왕을 마지막으로 신라는 우리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알쓸신잡에서도 그렇게 이야기 했었다. 삼릉은 주변 소나무로 인해 따뜻하게 감싸지고 있는 느낌, 주변 소나무는 삼릉에 그림지가 생기지 않도록 철저한 원칙에 의해서 심어진 것처럼 보였다. 삼릉을 보는 일도, 그리고 소나무 숲을 걷는 일도 참 경주스러운 여행이었다. '신라의 천년 수도 경주'라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 소란스럽지 않고 고풍스러운 이곳에 푹 빠져든다. 자연은 깨끗했고, 새소리는 경쾌했으며, 소나무 향기는 달콤했고, 목마를 닮은 특이한 바위에게도 눈길이 간다. 소소한 모든 것들에게 그렇게 시선이 가고 있었다.


경애왕릉

경주 삼릉숲에는 삼릉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나무숲을 걷다보면 여기저기 무덤이 보인다. 경애왕은 924 ~ 927년 동안 재위한 신라 55대 왕으로 54대 경명왕의 동생이다. 

그의 아버지는 53대 신덕왕이다. 그러니까 이곳에는 아버지인 신덕왕, 그의 아들이면서 차례로 신라의 왕이었던 경명왕과 경애왕의 무덤이 모두 있다.  경애왕은 후백제 견훤의 침입을 받아 생을 마감했다.



걷기 좋은 길

향기도 그윽

이곳은 무덤들을 통해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 산책하기 좋은 숲길이 있어 데이트 코스로도 좋은 곳이었다. 가파르지 않은 길은 걸어도 걸어도 발바닥이 아프지 않았고, 천년의 긴 역사를 가진 신라만큼이나 소나무의 향도 깊었다. 그리고 숲은 새소리로 경쾌했다.



뿌리 깊은 소나무

신라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소나무들이었을까. 하늘을 가리듯 나무는 풍성했다. 여름이라면 시원하여 최적의 여행지겠지만 늦가을이나 겨울에 이곳을 찾아온다면 체감온도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꼭 따뜻한 옷을 입고 찾아오도록 하자. 그렇지만 삼릉에 눈이 내리면' 얼마나 근사한 풍경을 만나게 될까. 늦가을, 저물어가는 햇빛이 숲 사이를 파고 들어온다.



사진찍기도 좋은 삼릉숲

구석구석이 이렇게 예쁜데, 소나무가 저렇게나 훌륭한 배경이 되어주니까 사진찍기에도 참 좋은 장소였다. 바닥에 뒹글어 다니는 도토리가 반갑다. 자연은 모두 깨끗했고, 살아있는 듯 생동감이 가득했으며, 그렇게 신라의 역사도 꿈틀댄다.



걷다보면 소나무숲

눈 돌리면 무덤

진짜 경주의 모습



경주 여행 중에 내가 이곳을 모르고 갔다면 또 얼마나 섭섭했을까. 처음 발을 디뎌 빽빽한 소나무들을 본 후 '여기 정말 좋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 했는지.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져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풍경은 역시 국내여행은 이곳이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고, 제주 자연휴양림을 만나는 느낌도 들었다.


삼릉을 둘러보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옷차림이 산뜻하다면 둘레길을 이용하여 포석정까지 걸어가거나 등산복 차림을 어느 정도 갖추었다면 남산 일대로 깊숙하게 들어가볼 수 있다. 신라가 불교를 국교화한 이후로 남산은 부처가 머무는 영산으로 신성시 여겨졌다. 때문에 수많은 불교 문화재가 많고, 등산을 하면 그것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산신성, 왕릉, 무덤, 궁궐터들이며 더 나아가 전설이나 설화들도 만날 수 있다. 만약 경주 여행코스를 넉넉하게 계획하여 2 ~ 3일 정도의 여행이라면 이 일대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는 것도 제대로 된 경주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된다.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경주 삼릉과 소나무숲

그리고 남산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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